승아 밴드에서 슬로리딩으로 엄마도 아이도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어서 어쩔 수 없이 읽기 시작했다.
2학년 둘째에겐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아이 둘다 참여하려고, 같은 책을 두권이나 사고 야심차게 시작.
미루다가 읽기 시작한 책은 시작하자마자 마지막장까지 덮을 수가 없이 재미있었다.
국내 문학이 아무래도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익숙한데다 감정선이 비슷해 주인공에 감정이입도 쉽다는 장점이 있어 나는 국내 문학이 더 끌리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프린들주세요와 같이 이국적이어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간접경험하게 하는 외국문학의 매력 또한 어마어마 하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 좋기도 하고, 새롭고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는것이겠지?
게다가 프린들주세요처럼 탁월한 작품은 묘사가 심플하면서도 구체적이어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직접 경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실감나서 그 낯선 매력에 푹 빠지게 한다.
링컨초등학교에 다니는 닉은 엉뚱하고 창의적이며 똑똑한 학생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문제상황이 닥쳤을 때 그냥 받아들이기보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곤 하는데.
5학년때 만난 그레인저 선생님을 만나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하나 생각해낸다.
그레인저 선생님은 사전을 매우 중시하는 성향이 있어 사전을 숭배할 정도인데,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장난을 좀 쳐보고 싶어진 닉은 "왜 이런 단어가 생겼나요? 이 단어는 누가 정했죠?"와 같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말은 우리 모두 합의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왜 이런 낱말은 이런 뜻이고 저런 낱말은 저런 뜻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개'라는 말이 꼬리를 흔들며 왈왈 짖는 동물을 뜻한다고 누가 정했나요? 누가 그런 거죠?"
선생님이 닉이 던진 미끼를 물었다.
"누가 개를 개라고 했냐고? 네가 그런거야, 니콜라스. 너와 나와 이 반에 있는 아이들과 이 학교와 이 마을과 이 주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모두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거야. 여기가 프랑스라면 그 털북숭이 네발짐승은 다른 말로, 그러니까 '시엥'이라고 불렀을거야. 우리 말로는 '개'지. 독일어로는 '하운드'이고.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다른 말이 있어. 하지만 이 교실에 있는 우리가 개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면, 개는 그 이름으로 불릴 테고, 나중에는 사전에도 그 이름이 올라가게 될 거야. 사전에 나오는 말은 바로 '우리'가 만드는 거란다. 그 사전은 아주 똑똑한 사람 수백 명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법이나 마찬가지란다. 물론 법도 변하지만, 꼭 변해야 할 때만 변하지. 새 낱말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사전에 있는 낱말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사전에 올라 있는 거야." -본문, 49~51쪽.
이상 그레인저 선생님의 말씀은 나도 아이들한테 종종 하는 말이다.
이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우리의 멋진 주인공 닉은 이 말을 토대로 이제부터 펜을 프린들이라고 바꿔부르는 이벤트를 벌인다.
하지만 선생님은 사전을 법처럼 절대적 권력을 지닌 것으로 만들고 펜을 프린들이라고 부르는 학생들은 남아서 반성문을 쓰게 하고, 이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게 된다.
동네 신문을 넘어서 전국 뉴스까지 타게 되고, 이제 프린들 사건은 이 작은 동네 웨스트필드에서는 조용해졌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핫한 이벤트가 되어 모두들 펜을 프린들이라고 부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닉은 말한다.
"이제 이 프린들이라는 단어는 나를 떠났어요. 그들의 것이죠."
이게 말의 힘, 언어의 묘미겠지?
동네에 사업수완이 좋은 버드아저씨는 상표권을 사고, 프린들을 프린트한 티셔츠, 각종 문구류 등을 찍어내게 되고 수익의 일부를 받기로 한 닉의 신탁계좌는 어마어마하게 불어나게 된다.
반성문을 쓰던 어느날, 선생님이 밀봉해서 주신 하얀 봉투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열어본 닉.
그 안에 들어있는 편지는 감동적이었다.
그레인저 선생님의 쪽지는 감동이었다.
이게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매력이다.
나는 어떤 선생님인가.
가루가 되게 찧고 빻이는 상황속에서도
묵묵히 내 일을 하고, 내가 마주하는 학생과 눈을 맞추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임용면접에서의 질문,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나요?"에 답하던 어린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다음은 책의 끝 부분, 닉과 그레인저 선생님이 주고받은 쪽지와 편지.
이 책이 왜 와닿나 싶었더니,
저자인 앤드루 클레멘츠도 시카고 인근 공립학교에서 7년의 교직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교실묘사가 더 실감났던 거구나.
승아에게는 영책으로 한 번 더 읽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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